'약사들 뿔났다' 비대면 약 배송 확대에 반발

전국 약사와 약대 학생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와 의약품 배송 확대에 반대하며 서울 도심에 모였다. 약사들은 약 배송이 확대될 경우 의약품 오남용과 의료 쇼핑이 늘어날 수 있다며 정부에 정책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 반면 환자·소비자 단체와 비대면 진료 업계에서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약 배송을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대로사거리에서는 비대면 약 배송 확대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흰 가운을 입고 모여 “무분별한 약 배송이 국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약 1만명이 참석했다고 밝혔고, 경찰은 참가자를 5000여명으로 추산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집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산업 활성화와 사설 플랫폼의 이익을 앞세운 정책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대면 약 배송을 둘러싼 논쟁은 올해 말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오는 12월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맞춰 현재 일부 환자에게만 허용되는 의약품 배송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섬·벽지 거주자와 장기요양 수급자, 장애인, 감염병·희귀질환자 등 일부 대상에게 비대면 진료로 처방받은 의약품을 배송할 수 있다.

정부는 여기서 더 나아가 모든 비대면 진료 환자가 의약품을 배송받을 수 있도록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중소벤처기업부, 국무조정실 등 관계 부처를 비롯해 약사단체와 비대면 진료 중개업체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운영할 계획이다. 다만 전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약 배송은 관련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12월 제도 시행과 동시에 전면 확대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는 이후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로 처방받은 의약품을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조제약의 품질 관리와 환자의 실제 수령 여부를 확인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동네 약국을 중심으로 약 배송을 허용하고 비대면 진료 전담 약국은 금지하는 내용의 제도도 마련하고 있다.
약사회는 정부의 확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약물 오남용을 막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와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약 배송부터 확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약사회는 비대면 약 배송이 확대되면 불필요한 의료 쇼핑과 의약품 오남용이 증가하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약대 학생들도 우려를 나타냈다. 김백건 대한약학대학학생협회장은 민간 배달망을 통해 의약품이 배송되는 과정에서 약이 변질되거나 다른 사람의 의약품과 뒤바뀌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지 따져 물었다.
대한약사회는 앞서 이달 9일 비대면 약 배송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중소벤처기업부와 국무조정실 등을 찾아 항의했고, 약 배송 확대를 전제로 한 민관 협의체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약사회는 앞으로도 결의대회와 1인 시위 등을 이어가는 동시에 관련 입법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반대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환자 모임과 소비자 단체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이용한 뒤 약을 직접 약국에서 받아야 한다면 제도의 편의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약품을 편리하게 받을 수 있도록 비대면 진료와 약 배송을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소비자연맹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소비자시민모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은 공동 성명을 통해 비대면 진료가 의약품 수령까지 포함해야 완성된다며 약 배송을 함께 제도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대면 진료 업계 역시 정부의 확대 추진 방침을 반겼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약 배송이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원칙적으로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편 대한약사회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제한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데 대해서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해당 개정안에는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업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과 함께 약사가 마약·향정신성의약품을 조제할 때 의약품안전사용정보시스템을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결국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앞두고 약 배송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약사회는 안전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환자·소비자 단체와 비대면 진료 업계에서는 이용 편의성과 의료 접근성을 위해 배송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향후 민관 협의와 법 개정 과정에서 양측의 요구를 어떻게 조율할지가 주요 쟁점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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